이번 주에 <이라이프>에 출판된 논문 중 좋은 글을 하나 발견하여 서론(Introduction)을 번역해 본다. (사실 초록이 워낙 인상적이라 읽기 시작했다...)


이론적 결과도 '결과'인가?

https://doi.org/10.7554/eLife.40018


초록

그렇다.


서론

<이라이프>에서 받은 결정 편지는 매우 호의적이었으나(우리 논문이 출판될 것은 확실했다), 리뷰어 중 한 명은 우리가 논문에서 실험 생물학과 물리학적 계산을 결합한 방식을 확실히 좋아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그 함의점을 도출해야 하며, 모델링은 데이터로부터 직접 끌어낸 함의점을 정량적으로 확인하는 정도로 강등시켜야(relegate) 한다."


그리고 이건 유일한 사례가 아니었다. 다른 논문의 리뷰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대신, 저자들은 데이터가 스스로 말하게 하고, 복잡한 이론 분석은 나중으로, 아마 "논의(Discussion)" 절로 미뤄둬야 한다." 많은 동료들이 이론과 실험을 섞은 논문들에 대해 동일한 반응을 겪어 왔다. 우리가 뭘 잘못한 것인가? 어째서 (이 리뷰어들의 말에 따르면) 관찰 결과와 이론을 "결과" 절에서 주고 받는 대화로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가?


이 표현들("강등"이라니!)에 어리둥절해지면서도, 이들은 내가 일부 생물학자들과 가졌던 오랜 경험과 공명한다. 즉, 그들은 이론의 가치를 물리학자들이 이해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많은 생물학자들에게, 이론적 결과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내 생각에, 대신 많은 이들에게 이론적 결과는 그저 일종의 의견으로,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본질적으로, 이론적 결과는 새로운 것을 전혀 더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전적인 결과/논의 이분법의 믿음 속에서 이론(혹은 흔히 부르듯 '모델링')은 기껏해야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부품일 뿐이다.


반면,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모형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익힌다. 우리가 실험을 하든 이론을 하든, 조화 진동자, 마구잡이 걷기, 이상화된 전기 회로 등이 우리 공구 상자의 공구들로 활약한다. 우리는 이들을 풀 수 있는 예제, 즉 잘 정의된 가정 속에서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으며, 결과가 모형 속 다양한 매개변수에 어떻게 의존하는지 해석할 수 있는 예제로 사용한다. 이 접근법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평가할 수 있다. 모형들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만약 이것이 바닥에 깔린 물리학이라면, A는 B에 따라 2차식으로 변할 것이다..." "이 가정 하에서, 데이터는 다음과 같이 감소할 것이다..." 만약 옳지 않은 결과를 찾아냈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주장들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과 모순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이론의 역할은 또한 예측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비록 내가 "실험 없이 예측이 무슨 쓸모가 있나?"라고 말할 생물학자들을 알기는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예측의 가치를 인정한다. 디랙의 반입자 예측과 아인슈타인의 태양빛 굴절 예측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힉스 입자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서 예측은 전설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예측을 실험에 대한 동기이자 학문을 전진시키는 동인으로 바라본다. 물론, 종종 예측이 틀릴 때도 있지만, 그것은 대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이론 연구가 예측의 형태를 그 자체로는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그 이론을 염두에 두고 실험을 설계하는 데에 유용할 수 있다. 일례로, Bialek (2018)에서는 레일리의 청각 연구부터 왓슨과 크릭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에서 이론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수많은 역사적 예제를 제시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나는 이론이 '결과'가 아니라는 관점에 반대를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이라이프>와 다른 생물학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들 속에서 당당하게 수학적 표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과 이론 결과를 맞춰 나감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나는 이것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잘 읽히는 논문들을 만들어낸다고 확신한다. 또한 이론과 실험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과학적 방법 측면에서도 더 정직한 것이다.


독자들은 물리학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들 속에서, 생물학적 정보, 배경, 결과가 자주 포함된다는 것을 듣고 흥미롭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수십년 전 고에너지 물리학자인 동료가 내 책상 위에서 점균류 Dictyostelium discoideum의 패턴 형성에 대한 논문 원고를 보고 던진 질문을 또렷이 기억한다. "왜 물리학자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걸 연구하죠?" 하지만 이제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연구를 하고 있고, 많은 물리학 학술지들은 cAMP 신호 전달, 나선형 파동, 주화성(走化性; chemotaxis) 등에 대한 논의로 가득차 있다. 만약 우리가 학제간 연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나는 생물학 논문들 안에 이론을 위한 중요한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 논문의 '결과' 절 뿐 아니라 이론과 실험을 결합한 논문의 '결과' 절에도 말이다.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만약 아직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면, 호지킨과 헉슬리의 유명한 1952년 논문을 읽고 실험과 이론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론은 논의 절, 혹은 심지어 보충 자료로 강등되지 않았고, 대신 마치 가장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것처럼 논문의 본문에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논문은 <생리학 저널(Journal of Physiology)>에 실렸다. 동일한 구조는 생화학 학술지에 (독일어로) 출판된 미카엘리스와 멘텐의 논문(1913)에서도 발견된다. 만약 이것이 백 년 전에 적절한 일이었다면, 어째서 이제는 수학적 모형들의 세부 사항들이 전부 논문 뒷쪽으로 밀려나야 하는가?


많은 독자들은 내가 생체 시스템의 정량적 묘사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가 생물학자와 물리학자의 고정관념 간의 긴장 관계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주어진 시스템의 모든 복잡성을 다 포함하려 하는 반면, 물리학자들은 일반성과 최소성을 추구한다. 최근의 다른 논평들에서도 강조되고 있듯 생물학 내에서 이론의 역할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 속에서 물리학-생물학 국경의 양편에 있는 과학자들을 훈련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물학 커뮤니티에 구체적인 예제를 제시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이 주어졌고, 이 논문의 한 가지 목표는 이 빈틈을 메우는 것이다.


전체 커뮤니티를 대표하여 어떤 주장을 하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아래에서 나는 (최소한 일부) 물리학자들이 생물학의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유명한 현상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대한 예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현상은 세포 수용기의 작동에서부터, 박테리아의 주화성, 활동 전위의 전파, 그리고 형광 광표백 기법(fluorescence recovery after photobleaching; FRAP)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바로 확산 현상이다. 시적 허용을 이용하여, 우리가 확산 방정식이나 픽의 법칙(Fick's law)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점에 있다고 상상하자. 따라서 아래에 주어지는 실험적 관찰과 이론적 분석은 모두 새로운 것이고 '결과' 절에 포함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데이터와 이론이 (바라건대) 커뮤니티 내에서 널리 이해될 수 있는 간결한 표현 속에서 통합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결과' 절의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다. 첫 번째 버전은 '미시적' 모형을 사용하는데, 이 모형은 생체 시스템을 간결하게 묘사하되 거시적인 규모에서 관찰되는 거동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들은 다 포함한다. 미시적 매개변수들이 거시적 답에 포함되는 방식은 일반적인 것(혹은 물리학자들의 표현으로 보편적인(universal) 것)으로 드러날 것이고, 이것이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다. 두 번째 버전은, 아마 조금 더 어려울 텐데, '차원 분석'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는 자연 현상을 분석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이다. 여기서, 다양한 양들 사이의 관계는 이들이 측정되는 단위(질량, 길이, 시간, 전하 등)를 살펴봄으로써 추론된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구체적으로는 맥스웰의 1869년 연구에서부터 사용된 기법으로서, 이 기법은 종종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는데, 그 오차는 흔히 쓰는 표현대로, 많아야 두 배 차이(factors of two)이다.


더 궁금하면 논문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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