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열역학-통계역학을 열심히 쓰는 분야에 있다 보니, 좀 더 근본적인 열역학-통계역학에도 관심이 있다. 수학/물리학 능력이 일천한 관계로 이런 연구를 쉽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워 들으면서 조금씩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약한 비평형계 엔트로피의 직접 측정값이 기브스-섀넌 꼴과 일치하다

https://doi.org/10.1073/pnas.1708689114


중요성

열역학 제2법칙은 고립계의 총 엔트로피가 변하지 않거나 증가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라 물리학 법칙들이 제한되고, 아무 부작용 없이 열을 일로 전환하는 영구기관은 존재할 수 없다. 제2법칙의 핵심에는 엔트로피에 관한 명제가 있지만, 엔트로피는 규정하기 힘든 개념이다. 오늘날까지도 엔트로피는 직접 측정된 적이 없으며, 온도에 따른 비열을 적분함으로써 계산하는 것처럼 그저 다른 양으로부터 추론되었을 뿐이다. 이제, 정보 조각의 일부를 지우는 데 필요한 일을 직접 측정함으로써 우리는 엔트로피의 변화를 직접 분리해냈고, 이 값이 섀넌(Shannon)이 제시한 함수꼴과 일치함을 보임으로써 이 맥락에서의 물리적 의미를 끌어냈다.


초록

확률 열역학(stochastic thermodynamics)은 고전 열역학을 확장하여 한 개 이상의 열원과 접촉하고 있는 작은 계들까지 다룬다. 확률 열역학은 열 요동의 효과까지 설명할 수 있으며, 열역학적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계들도 묘사할 수 있다. 기본적인 가정은 섀넌 엔트로피 식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비평형계의 엔트로피를 묘사하는 적절한 도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연구에서 거시적 평형에 있지는 않지만 미시적 평형에 도달한 계에 대해 실험적으로 이 함수를 측정하였다. 이 계는 물에 녹아 있는 마이크론 크기의 콜로이드 입자로, 피드백 덫으로 만들어진 가상 이중 벽 퍼텐셜에 갇혀 있다. 우리는 정보 조각 일부를 지우는 데 필요한 일을 측정하였고, 이 값이 두 상태 계(two-state system)의 섀넌 엔트로피에 의해 제한됨을 발견했다. 게다가, 느린 과정의 가역성을 직접 측정함으로써, 우리는 기대되는 열역학 한계에 도달할 수 있는 실험 과정과 도달할 수 없는 실험 과정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언어학/심리학 관련 논문들은 항상 재미있다. 나 보고 연구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언어별 색 명명법은 색의 유용성을 반영한다

중요성
색을 가리키는 단어의 수는 언어마다 매우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어(예를 들어 빨강)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지각(知覺)에 있어 해당 색깔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다. 본 연구는 "색 용어의 용법이 의사소통상의 필요에 의존한다"라는 대안 가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아마존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사는 치마네(Tsimane) 족으로부터 보스턴의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에서 따뜻한 색이 차가운 색에 비해 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에서 사용된다. 모든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패턴은 세상의 색 분포를 반영한다. (우리가 화제로 삼는) 물체들은 보통 따뜻한 색을 띠지만, 배경은 차가운 색이다. '의사소통상의 필요' 가설은 또한 색 용어의 수가 언어마다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즉, 문화에 따라 색의 쓸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산업화는 오직 색에 의해서만 구분 가능한 물체들을 만들어내기에 색의 유용성을 증가시킨다.

초록
언어별로 색을 분류하는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는 110개 언어를 대상으로 한 세계 색 설문조사(WCS; World Color Survey)의 결과를 분석하여, 언어 간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색 조각에 관한 의사소통은 따뜻한 색(빨강/노랑)의 경우가 차가운 색(녹색/파랑)의 경우보다 항상 더 효율적임을 발견했다. 우리는 중요한 물체들에 대해 인간 관찰자가 수집한 자연 이미지의 데이터 더미 속 색 분포를 분석하여 물체들이 차가운 색보다는 따뜻한 색을 띠고 있음을 보였다. 이 결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색 명명 효율의 유사성은 보편적인 유용성을 가진 색들을 반영한다는 것이며, 이로써 색 분류의 기원을 좌우하는 원리(색의 유용성)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WCS의 방법론과 관련된 잠재적 문제들이 이 정보 이론 분석을 뒤집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다. 이는 색 명명 과제의 두 가지 극단적 버전을 이용하여 세 가지 다른 그룹에서 원본 데이터를 수집함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1) 아마존에 고립되어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사는 치마네 족, (2) 볼리비아의 스페인어 구사자들, (3) 영어 구사자들이다. 이 데이터를 이용하여 우리는 또한 색 유용성 가설의 또다른 예측을 시험해 볼 수 있었는데, 이 예측은 언어별 색 분류법의 차이가 해당 문화에서 색의 유용성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로서, 치마네 족의 색 명명법은 상대적으로 낮은 의사소통 효율을 가지고 있으며, 치마네 족은 친숙한 물체들을 가리킬 때 색 용어를 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치마네 족의 색 명명법은 (자연물과 비교하여) 인공적으로 색을 입힌 물체를 가리킬 때 더 자주 사용되었으며, 이는 산업화가 색의 유용성을 강화했음을 암시한다.
화학자/물리학자로서 수소 원자는 항상 마음을 뛰게 한다. 이번 주 <사이언스>에는 수소 원자와 관련된 기초적인 물리량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아래에 두 편의 소개글과 초록, 그리고 그림 1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양성자는 얼마나 큰가?

양성자의 크기에 대해, 뮤온 수소의 분광 분석에서 얻어낸 값과 "일반적인" 수소의 기존 결과들을 평균하여 얻은 값 사이의 차이가 지난 7년간 물리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해왔다. 이제 Beyer et al.은 이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인 수소에 대한 매우 정확한 분광 측정으로 양성자의 크기를 얻어냈다. 놀랍게도, 이 값은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된 과거 측정값들의 평균과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놀랍게도, 이 값은 뮤온 수소 실험에서 뽑아낸 값과 일치했다. 수수께끼를 푸는 일은 이제 과거 결과들이 새 결과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모든 실험에 내재된 계통 오차의 원인을 다시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양성자 반지름의 재검토

모든 원자의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는 단 하나의 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을 가지고 있다. 이 양성자의 반지름은 매우 작아 약 1 fm 가량 되며(1 fm는 10-15 m), 수소 원자의 반지름보다 6만 배 작다. 양성자는 이렇게 근본적인 입자이기 때문에, 그 크기를 측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0년 이후로 양성자의 크기는 이론가들과 실험가들을 모두 당혹스럽게 해왔다. 전자 대신 전자보다 200배 더 무거운 기본 입자인 뮤온이 양성자를 돌고 있는 특이 수소(exotic hydrogen)의 전이 주파수를 측정해보면, 양성자의 크기가 약 4% 작게 측정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수소 분광 분석 및 전자-양성자 산란 결과와 비교할 때 6σ 수준인 이러한 불일치는 "수소 크기 수수께끼"를 만들어 냈고,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격렬한 과학적 논쟁이 벌어졌으나 여태껏 확실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Beyer et al.은 일반적인 수소의 발머 계열 방출선 중 하나인 2S-4P 전이 주파수를 측정한 결과를 제시한다. 이들이 스펙트럼으로부터 얻어낸 양성자 크기값은 뮤온 수소 분광 분석에서 얻어낸 값과 일치하고, 일반적인 수소에 대한 기존 측정 결과들 대부분과 불일치한다. (기존의 측정값들은 매우 많다!) 이들은 또한 자연의 상수 중 가장 정확하게 결정된 상수 중 하나인 뤼드베리 상수(Rydberg constant)가 문헌값과 3 시그마 이상 차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소 원자에서 얻어낸 뤼드베리 상수와 양성자 반지름

초록
"양성자 반지름 수수께끼"의 핵심에는 일반적인 수소 원자(H)와 뮤온 수소 원자(μp)에서 결정된 양성자의 근평균제곱 전하 반지름(rp) 간의 4 시그마 차이가 있다. 저온 수소 원자살을 사용하여 우리는 H의 2S-4P 전이 주파수를 측정하였고, 이로써 뤼드베리 상수 R = 10973731.568076(96) m-1rp = 0.8335(95) fm이라는 값을 얻었다. 우리가 얻은 rp 값은 기존의 H 세계 데이터보다 3.3 합성 표준 편차만큼 작지만, μp 값과는 잘 일치한다. 우리는 이웃의 원자 공명에서 기인하는 양자 간섭으로 발생하는 방출선 이동(line shift)을 제거할 수 있는 비대칭 맞춤 함수(asymmetric fit function)를 쓸 것을 제안한다.

그림 1: 뤼드베리 상수 R과 수소의 RMS 전하 반지름 rp
본 연구에서 얻어낸 rp 값(녹색 다이아몬드)과 μp 분광 분석에서 얻어낸 값(분홍색 띠와 보라색 사각형)은 일치한다. 우리는 H 분광 세계 데이터(파란 띠와 파란 삼각형)에 대해 3.3 합성 표준 편차만큼의 차이를, 기본 상수들에 대한 CODATA 2014 세계 조정(회색 육각형)에 대해서는 3.7 합성 표준 편차만큼의 차이를 발견했다. H 세계 데이터는 15개의 개별 측정값으로 이루어져 있다(검은 원은 광학 측정, 검은 사각형은 마이크로파 측정). H 데이터에 더하여, CODATA 조정값은 중수소 데이터(9개 측정값)과 탄성 전자 산란 데이터를 포함한다. rp 대신 R에 대해서도 거의 동일한 그래프가 얻어지는데, 이는 두 매개변수 간의 강한 상관성 때문이다. 이는 아래쪽 R 축에 나타나 있다.

<화학 종설(Chemical Reviews)>은 화학의 여러 주제를 다루는 리뷰 논문들을 수록하는 학술지인데, 요번 호에 켄 딜(Ken Dill)이 쓴 흥미로운 리뷰가 실렸다. 보통 여기에 실리는 논문들은 엄청 두껍기 때문에 -_-;; 당연히 전체를 다 번역할 수는 없고, 아래에 초록과 목차를 번역한다.

물의 성질은 어떻게 그 분자 구조 및 에너지에 담겨 있는가

초록
물 분자의 구조 안에 어떤 식으로 물의 물성이 담겨 있는가? 이 질문은 지구의 생태계, 지구상의 물질, 지구화학 및 지구물리학, 광범위한 산업화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물은 특이한 액체 및 고체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은 응집력이 강하다. 물은 부피로 볼 때 변칙 현상을 보이는데, 고체(얼음)가 액체(물) 위에 뜨고, 압력을 가하면 액체가 어는 것이 아니라 고체가 녹으며, 열을 가하면 액체가 수축한다. 물은 어떤 물질보다도 많은 고체 상을 가지고 있다. 물의 과냉각 액체는 발산하는 열역학 반응함수를 보인다. 물의 유리 상은 잘 부서지는 것도 아니고 강한 것도 아니다. 물을 구성하는 이온들, 즉 수소 이온과 수산화 이온은 어떤 이온보다도 빠르게 확산된다. 이온이나 기름을 물에 녹이는 데에는 큰 엔트로피와 열용량이 수반된다. 우리는 이러한 성질들이 어떻게 물의 분자 구조 및 에너지에 담겨 있는지를 이론, 시뮬레이션, 실험에서 얻은 이해를 기반으로 살펴볼 것이다. 더 단순한 액체와 마찬가지로, 물 분자는 거의 구형이고 다른 분자들과 판데르발스 힘을 통해 상호작용한다. 하지만 더 단순한 액체들과는 달리,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수소결합이 열린 사면체 우리 구조를 만들고, 이로써 물의 독특한 부피적 및 열적 성질들이 나타난다.

목차
1. 서론: 왜 물이 그리도 중요한가?
1.1. 물은 생명에 필수적이다
1.2. 물은 인간의 기초적인 필수 요소이며, 또한 인간 갈등의 뿌리이다
1.3. 물은 지구물리학 및 지구화학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4. 물은 산업 공정에 필수적이다

2. 어떤 면에서 물은 평범한 물질이지만, 다른 면에서 물은 특이하다

3. 물의 구조-성질 관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1. 물의 양자역학, 전자, 수소결합을 모형화하기
3.2. 물은 원자 수준의 포텐셜을 사용한 반(半)경험적 고전 시뮬레이션으로 모형화되기도 한다
3.3. 물의 방향-병진 결합을 포착한 메르세데스-벤츠 거칠게 간 모형(Mercedes-Benz coarse-grained model)

4. 물의 구조와 에너지 안에 그 성질이 어떻게 담겨 있는가?
4.1. 물은 수소결합으로 인해 더 단순한 액체들보다 더 응집력이 크다
4.2. 물의 부피적 변칙 현상들은 판데르발스 인력과 수소결합에서 기인한 팽창 사이의 경쟁에서 기인한다

5. 물은 많은 고체 결정 (얼음) 상을 보인다

6. 과냉각된 물은 액체-액체 임계점을 보이는가?

7. 비극성 용질을 둘러싼 물의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7.1. 기름과 물이 항상 섞이는 것은 아니다: 수소성 효과
7.2. 두 수소성 분자는 물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7.3. 물은 수소성 표면을 피한다

8. 물은 이온 주변에 용매화 구조를 형성한다
8.1. 이온은 물의 구조를 더 정렬하는지 깨는지에 따라 질서 유발체(kosmotrope) 또는 무질서 유발체(chaotrope)가 된다
8.2. 호프마이스터 효과에서, 염은 비극성 분자들이 물 속에서 뭉치게도 흩어지게도 할 수 있다
8.3. 두 이온이 물 속에서 상호작용할 때, 둘의 용매화 껍질이 용액의 성질을 결정한다

9. 갇힌 공간 및 액체-기체 계면에 있는 물
9.1. 물은 나노튜브 안에서 부분적 수소결합으로 구조를 만든다
9.2. 얼음의 경계: 얼음은 갇힌 공간 및 탄화수소 주위의 포접 우리(clathrate cage)에서 변화한다

10. 분자 구조가 물의 동역학적 성질을 결정한다
10.1. 물은 유리 전이 온도 아래에서보다 위에서 더 빠르게 확산한다
10.2. 저온의 물 및 과냉각된 물의 확산과 점도는 고밀도와 저밀도 물 사이의 상대적인 비율에 의존한다
10.3. 수소 이온과 수산화 이온은 물 안에서 빠르게 확산한다

11. 물 모형을 개선하는 데 어려운 점들

12.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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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이라이프>를 편애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이 논문은 소개해야겠어서 또 <이라이프> 논문을 들고 왔다. (게다가 이 논문 저자 중에 내 사형(師兄)이 포함되어 있다 ㅋㅋ) 아래에 초록과 요약문을 번역한다.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이 독감 진화를 조절한다

초록
RNA 바이러스 진화를 예측하고 조절하려면 이 병원체에 접근할 수 있는 변이 판도(mutational landscape)를 규정하는 분자 요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RNA 바이러스는 대개 변이 속도가 빠르기에,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생물리 성질을 갖는 단백질 변이들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따라 단백질 접힘과 기능에 위협이 가해지고, 이 위협에 의해 바이러스의 진화가 제한된다. 우리는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 유지 메커니즘이 바이러스 단백질 변이체들의 적응도에 대한 주요 결정 인자로서 바이러스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화학적으로 통제된, 다양한 단백질 항상성 환경을 가진 숙주 세포 안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증식시켰다. 우리는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체에 작용하는 선택압의 본성과 특정 변이 궤적의 접근 가능성이 모두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에 의해 유의미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아냈다. 이 발견으로 바이러스 진화를 결정하는 숙주-병원체 상호작용의 특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을 조절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저항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항바이러스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에도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요약
독감 바이러스는 우리의 면역계에 침입하여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킴으로써 치료에 대한 저항성을 키운다. 특별히, 그들의 유전체에 발생하는 변이들로 인해 독감 바이러스 단백질들이 변형되어 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방어 체계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 변이들은 공짜가 아니고, 바이러스 단백질들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정한 3차원 구조를 만드는 과정("단백질 접힘"이라 불린다)을 방해하여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인간 세포 안에는 샤페론(chaperone)이라 불리는 단백질들이 존재해 우리의 다른 단백질들이 올바로 접힐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독감 바이러스들은 스스로 샤페론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대신 숙주의 샤페론을 훔쳐서 사용한다. 따라서 숙주의 샤페론들은 바이러스의 증식 능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숙주 샤페론들이 바이러스의 진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논문에서 Phillips et al.은 포유류 세포를 이용해 숙주 샤페론들이 어떻게 진화하는 독감 바이러스 군집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먼저 세포들을 조작하여 각각 정상 샤페론 수치, 높은 샤페론 수치, 혹은 비활성 샤페론을 가진 세포들을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H3N2 독감 바이러스를 약 200 세대에 걸쳐 이들 다른 조건에서 키운 후, 유전자 서열을 뽑아내 이 바이러스가 각 특징적인 숙주 샤페론 환경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조사했다.

Phillips et al.은 숙주 샤페론들이 독감 바이러스 군집에서 변이가 누적되는 속도 및 독감 유전체에 누적되는 변이의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Hsp90이라 불리는 샤페론이 비활성화되었을 경우, 바이러스 군집에서 변이들이 기존 유전자를 대체하는 속도는 정상 혹은 높은 샤페론 수치를 가진 세포들에 비해 훨씬 느렸다. 게다가, 일부 특정 변이들은 높은 샤페론 수치의 세포들에서 더 번성했지만, 다른 변이들은 샤페론이 비활성화된 세포에서 더 번성했다.

이 결과는 독감의 진화가 숙주 샤페론 수치에 의해 복잡하고 중요한 방식으로 영향 받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샤페론이 어떤 단일 변이의 효과를 향상시키는지 방해하는지는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 이 발견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독감 바이러스가 사용할 수 있는 샤페론은 조직에 따라, 개체에 따라, 감염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바이러스가 스스로를 변형하고 진화하는 능력은 샤페론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견은 같은 목적으로 숙주 샤페론을 훔쳐 쓰는 HIV나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다른 바이러스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정 샤페론이 바이러스의 적응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발열이나 바이러스의 숙주 전환 등과 같이 병리적으로 유의미한 조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효과를 정량화해야 할 것이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장차 이러한 통찰력이 바이러스가 저항성을 진화시킬 수 없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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