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화학>은 In Your Element라는 섹션을 운영하여 원소를 하나씩 소개한다. 이번 호에는 바나듐에 대한 소개글이 실렸는데, 흥미있을 것 같아 번역해 보았다. (번역해 놓고 보니 엄청 잘 쓴 글은 아닌 듯...)

브이 포 바나듐

왜 내가 학부 전공으로 화학을 선택했는지는 미스터리로, 심지어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나는 일반적인 원리들은 대충 이해했지만, 산화/환원이니 시스/트랜스니 R/S니 하는 세부 사항이나 그 세부 사항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다루는 부분에 오면, 이 모든 내용이 마치 나에게 오른손을 왼손이랑 구분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려고 설계된 것만 같았다. 따라서 이 과목에 그리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연구실에서 처음 만난 (그냥 그 존재를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관련 실험을 해보려 했다는 의미로) 것으로 기억하는 원소 중 하나가 바나듐이다. 내가 들은 무기화학실험 수업의 커리큘럼에는 5가 복합체 VO(acac)2(acac는 아세틸아세톤)를 합성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있었고, 거기서 나는 화학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에 관한 생생한 실례를 보았다.

대부분의 전이 금속처럼, 바나듐은 광범위한 산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주로 +2에서 +5사이에 분포하지만 -1에서 +5까지의 산화 상태가 모두 존재하고 심지어 드물지만 V(CO)53-의 -3까지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다양한 전자 전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배위결합 복합체(coordination complex)에서 전자 전이는 금속 이온으로부터 리간드로, 혹은 그 반대로 전하를 전이하는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 이 과정의 들뜸 에너지가 전자기 스펙트럼의 가시광선 영역에서 일어나기에, 시스템이 빛을 흡수하면 특징적인 강렬한 색깔을 띠게 된다. VO(acac)2의 경우 파란색이다.

(대개 리간드를 더하거나 바꾸는 방법으로) 금속의 산화 상태를 바꾸는 것은 배위결합 환경에 영향을 주고, 이는 해당 금속이 결부되어 있는 전하 전이 과정의 에너지를 바꾸게 되며, 따라서 복합체의 색깔을 바꾼다. 내가 수강한 학부 실험 수업의 나머지 시간은 다양한 환원제를 써서 바나듐의 산화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산화 상태가 변화할 때마다 색깔이 급격히 변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며, 이 경험으로 인해 이 원소의 이름을 바나디스(Vanadis)라는 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훌륭한 결정을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바나디스는 보통 프레비아(Frevia)로 알려져 있는 노르웨이의 여신으로, 아름다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전이 금속 화합물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색소로 이용되기 알맞다. 이들의 풍성한 산화환원 화학은 또한 생체 시스템에서 쓸모를 발휘한다(광합성에서 마그네슘이 사용되는 것을 생각하라). 산화환원 반응은 또한, 당연하게도 전기화학의 핵심에 위치하고, 바나듐 흐름 배터리(vanadium flow battery)는 전극 대신 액체 전해질 안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배터리는 V4+/V5+와 V2+/V3+의 황산염 수용액을 이온교환막으로 분리하여 양극과 음극 전해질로 사용한다.

전이 금속은 신기한 물리학과도 연결된다. 이들이 고체 상태로 결합하여 응축물질 물리학자들이 강상관전자계(strongly correlated electron system)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만들면 놀라운 성질들이 나타난다.

너무도 많이 쓰여서 인간 역사의 한 시기가 통째로 그 이름을 따라 붙여진 철의 전도성과 강자기성은 고대로부터 사용된 두 가지 중요한 성질이다(예를 들어 자철석으로 만든 나침반 바늘). 1980년대 중반에, 일부 산화구리는 액체 질소로 냉각시킬 때 초전도성을 띤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이 발견으로 J. Georg Bednorz와 K. Alex Müller는 198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동일한 시기에, 얇은 철-크로뮴 박막이 자기장 하에서 강력한 전기 반응성을 보인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 효과는 이제 거대 자기저항이라는 용어로 불리는데) 오늘날 사용되는 메모리 저장 기술에 토대가 되었다. (이로써 Albert Fert와 Peter Grünberg는 200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이 모든 성질들은 각 시스템의 전자들이 배열될 수 있는 다양한 조합에서 기인하며, 이제 재료과학자들은 이 거의 무제한의 집합을 다루기에 점차 능숙해지고 있다.

23번 원소 역시 본질적으로 고체 상태에서 매우 흥미롭고 유용한 성질들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산화바나듐은 상온 밑으로 냉각될 때 전도 금속에서 비전도 절연체로 바뀌는 산화물의 대표적인 예이다. 실제로, 이 금속-절연체 전이는 압력이나 도핑, 전기장 등의 다양한 외부 매개변수들로 조절할 수 있고, 이는 전자기 저항과 광학 성질에 큰 변화를 불러오므로 VO2는 코팅과 센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된다.

다른 전이 금속 원소들과 마찬가지로, 바나듐의 놀라운 화학적 및 물리학적 성질들은 전부 그 d 전자의 풍성한 거동에서 기인한다. 내가 그 작지만 인상적인 경험을 했던 학부 화학 시절에, 나는 이 강상관전자계가 내가 물리학자로서 연구하는 주제를 차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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