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에 실린 뉴스글이다. 내 전공을 살려 오랜만에 화학 이야기를 번역해 본다. 속도맵 이미징 기법은 학부 때 있었던 연구실에서 다뤘던 기법이고, SN2와 E2은 유기화학 1 들을 때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파트였기에 이 연구는 왠지 정이 간다.

물리화학: 반응 메커니즘의 지문 채취하기

초록
분자 구조의 조그마한 변화도 화학 반응의 양태를 바꿀 수 있지만, 반응 메커니즘을 직접 연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쟁하는 메커니즘들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이미징 기법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화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화학 반응을 샅샅이 쪼개 반응의 각 단계를 이해해 왔다. 반응의 정확한 메커니즘, 예를 들어 화학 결합이 만들어지고 쪼개지는 순서를 아는 것은, 결과물을 예측하고 분자 및 물질을 설계하며 새로운 화학을 발견하는 초석이 된다. 반응 메커니즘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대개 간접적인 관측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를 결합해야 하기에, 짐작과 추리가 모두 필요하다. Carrascosa et al.1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속도맵 이미징(velocity-map imaging)이라 불리는 기법을 사용하여 하나의 메커니즘도 아니고 서로 경쟁하는 두 메커니즘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했음을 보고했다.

저자들은 탄소 원자에 붙어 있는 X 반응기가 (음이온 Y-으로 반응에 등장하는) Y 반응기로 대체되는 치환 반응에서 시작했다(그림 1). 이 과정을 일컬어 SN2 메커니즘이라 부르고, 이는 유기화학에서 가장 많은 연구된 메커니즘 중 하나이다. 이 반응의 본질은 X와 Y 중 누가 탄소 원자에 더 강한 결합으로 붙는지를 겨루는 경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Y가 더 강한 결합을 만든다면 X를 대체한다.

[그림 1] SN2 반응 메커니즘

탄소 원자에 결합한 X 반응기가 (Y- 이온으로 등장하는) Y 반응기로 대체되는 치환 반응은 SN2 메커니즘으로 일어날 수 있다. 반응물 Y-는 탄소 원자 기준으로 X의 건너편 방향으로 다른 유기 반응물에 접근하고, C-Y 결합은 부분적으로 형성되고 C-X 결합은 부분적으로 분해된 전이 상태를 통과한다. 탄소 원자에 붙은 세 개의 치환기(여기서는 수소 원자)는 반응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며, 마치 우산이 뒤집히는 것과 같은 기하 반전(geometrical inversion)을 일으킨다.

SN2 메커니즘은 1930년대에 영국 화학자 Christopher Ingold에 의해 처음으로 자세히 연구되었다2. 이 연구는 많은 양의 추리를 필요로 했으며 여러 조건 하의 다양한 치환 반응을 관찰하여 얻은 두 가지 핵심적인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첫 번째는, 반응 속도가 두 반응물 모두의 농도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두 반응물이 메커니즘의 가장 느린 단계(역자 주: 흔히 속도결정단계 rate-determining step라 부른다)에 개입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생성물 분자의 구조는 유기 반응물의 구조에 대해 항상 뒤집혀 있었다. 이로부터 Y와 X가 탄소에 붙는 결합이 형성되고 분해되는 것이 두 단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며, Y-가 X의 반대 방향에서 탄소 원자에 접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정 중에, 반응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탄소 원자에 붙은 세 개의 치환기는 마치 우산이 뒤집히는 것과 같은 기하 반전(geometrical inversion)을 일으킨다.

Ingold의 방법론은 다소 간접적이었으나, Carrascosa et al.과 같은 연구실 출신의 연구자들이 2008년에 밝혀낸 바3에 따르면 기체 상태에서 SN2 메커니즘을 연구함으로써 좀 더 직접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 접근법에서, 두 반응물은 분리된 기체 분자살(molecular beam) 형태로 발사되어 서로 교차하는데, 이 교차점에서 반응이 일어난다. 분자살을 사용함으로써 반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반응물의 속도가 정교하게 조절될 수 있다. 생성물이 산란되는 방향 또한 속도맵 이미징 기법으로 측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얻은 이미지는 반응 메커니즘의 직접적인 '지문(fingerprint)'이 된다.

Carrascosa와 동료들은 이 접근법을 사용하여 일련의 치환 반응을 연구하였다. 이들은 아이오딘화 메틸(CH3I)의 아이오딘 원자가 염소 원자로 대체되는 간단한 경우에서 시작했다. 저자들은 SN2 메커니즘에서 기대되는 바와 같이, 이 반응에서 생성된 아이오딘화 이온(I-)이, 입사된 염화 이온(Cl-)이 온 방향과 거의 완전히 같은 방향으로만 산란되었음을 관찰했다(그림 2a). 게다가, 반응 생성물은 에너지적으로 허용되는 가장 빠른 속도에 근접한 속도로 날아갔는데, 이는 들어오는 Cl-의 운동 에너지는 반응에 필요한 만큼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생성물 I-의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생성물의 진동이나 회전으로 흩어진 에너지는 아주 극소량이라는 것이다.

[그림 2] SN2와 E2 반응 메커니즘의 속도맵들

a. 이 도표는 Carrascosa et al.1이 기체 상태에서 염화 이온(Cl-)을 아이오딘화 메틸(CH3I)과 반응시키는 실험을 5만 번 반복하여 얻은 아이오딘화 이온(I-) 생성물의 속도 분포를 보여준다. 색깔은 도표의 각 구역에서 관측된 I- 이온의 개수를 정규화한 값이며, 0(암청색)부터 최댓값(암적색)까지를 표현한다. 충돌은 그림의 중심에서 일어나며, vxvr은 각각 반응물의 경로에 평행한 속도 성분과 수직한 속도 성분을 나타낸다. 각 픽셀의 위치는 생성물의 속도(중심으로부터 가장 멀리 위치한 픽셀은 가장 빠른 속도에 대응)와 산란각을 보여준다. 백색 화살표는 처음에 반응물이 접근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이 속도맵은 I- 이온이, 입사된 Cl- 이온이 온 방향과 거의 완전히 같은 방향으로만 산란되었음을 보여주며, 이와 같은 패턴은 전반적으로 SN2 반응의 특징이다. 적색 점선 원은 검출된 SN2 반응의 생성물 I-가 에너지적으로 가질 수 있는 최대 속도를 나타낸다. b. 저자들이 아이오딘화 메틸을 아이오딘화 에틸(CH3CH2I)로 대체했을 때 I-의 속도맵은 눈에 띄게 변화하였는데, 이는 (E2 제거 반응으로 알려진) 다른 종류의 반응이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백색 점선 원은 E2 반응의 생성물 I-가 에너지적으로 가질 수 있는 최대 속도를 나타낸다.

SN2 메커니즘의 지문을 만들어낸 후, Carrascosa et al.은 좀 더 흥미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다른 반응물을 수반하는 비슷한 과정들에 대해 이미지를 얻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오딘화 메틸의 수소 원자 중 하나가 메틸기로 대체되었을 때(즉 아이오딘화 에틸 CH3CH2I의 경우에), SN2 메커니즘이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반응의 산란 분포(그림 2b)가 아이오딘화 메틸의 반응에서 기록된 분포와 전혀 닮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생성물은 반대 방향으로 산란되었고, 가장 강력한 산란이 일어난 곳은 그림의 중심에 훨씬 가까웠다.

이 예제는 화학의 흔한 문제를 보여준다. 반응물의 화학적 복잡성이 가장 간단한 경우 너머로 증가하기 시작하면, 종종 두 가지 이상의 반응 양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이오딘화 에틸과 염소의 경우, 경쟁하는 반응은 E2 제거 반응으로, Cl-가 수소 원자를 메틸기에서 떼어내 염화수소(HCl)를 형성하고, 그 결과로서 해당 유기 반응물의 전자가 재배치되면서 두 탄소 원자 사이에 이중 결합이 형성되고, 결국 에틴(CH2=CH2)이 만들어지면서 I-는 떨어져 나간다. SN2 메커니즘과 마찬가지로, 이 과정은 결합 형성과 분해가 동시에 일어나는 단일 단계 과정이다.

Carrascosa et al.은 SN2와 E2 메커니즘 간의 경쟁을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 하에서 비슷한 반응들을 여럿 살펴 보았다. 그들이 개발한 직접 시각화 방법 덕분에 그들은 E2 메커니즘에 최소한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반응물 할로젠 이온이 이탈기 할로젠 이온과 같은 방향으로 유기 반응물에 접근하는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기체상 방법론들과 마찬가지로, 이 저자들의 접근법은 용매 분자들이 반응 메커니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정보를 주지 않는다. (실제로 유기 반응들은 거의 항상 용액상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만약 Carrascosa et al.의 실험과 같은 실험들이 용액상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에 대한 연구와 접목되면, 그 결과로 반응물 효과와 용매 효과를 분리해내는 새로운 방법을 얻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저자들의 기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반응의 복잡도에는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분자 크기가 커짐에 따라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나, 또한 큰 분자들을 기체 상태로 만드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연구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반응의 경우, 간단하게 만든 모델 시스템을 살펴봄으로써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연구는 메커니즘 연구 기법 가운데 초석을 놓는다. 예를 들어, 이 접근법은 부피가 큰 원자단이 분자의 일부를 가릴 때 나타나는 입체 장애 효과 때문에 반응 메커니즘이 변하는 것을 살펴볼 때 사용될 수 있으며, 또한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는 반응들이 실제로 그러한지 연구할 때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최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