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이라이프>에 출판된 논문 중 좋은 글을 하나 발견하여 서론(Introduction)을 번역해 본다. (사실 초록이 워낙 인상적이라 읽기 시작했다...)


이론적 결과도 '결과'인가?

https://doi.org/10.7554/eLife.40018


초록

그렇다.


서론

<이라이프>에서 받은 결정 편지는 매우 호의적이었으나(우리 논문이 출판될 것은 확실했다), 리뷰어 중 한 명은 우리가 논문에서 실험 생물학과 물리학적 계산을 결합한 방식을 확실히 좋아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그 함의점을 도출해야 하며, 모델링은 데이터로부터 직접 끌어낸 함의점을 정량적으로 확인하는 정도로 강등시켜야(relegate) 한다."


그리고 이건 유일한 사례가 아니었다. 다른 논문의 리뷰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대신, 저자들은 데이터가 스스로 말하게 하고, 복잡한 이론 분석은 나중으로, 아마 "논의(Discussion)" 절로 미뤄둬야 한다." 많은 동료들이 이론과 실험을 섞은 논문들에 대해 동일한 반응을 겪어 왔다. 우리가 뭘 잘못한 것인가? 어째서 (이 리뷰어들의 말에 따르면) 관찰 결과와 이론을 "결과" 절에서 주고 받는 대화로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가?


이 표현들("강등"이라니!)에 어리둥절해지면서도, 이들은 내가 일부 생물학자들과 가졌던 오랜 경험과 공명한다. 즉, 그들은 이론의 가치를 물리학자들이 이해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많은 생물학자들에게, 이론적 결과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내 생각에, 대신 많은 이들에게 이론적 결과는 그저 일종의 의견으로,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본질적으로, 이론적 결과는 새로운 것을 전혀 더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전적인 결과/논의 이분법의 믿음 속에서 이론(혹은 흔히 부르듯 '모델링')은 기껏해야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부품일 뿐이다.


반면,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모형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익힌다. 우리가 실험을 하든 이론을 하든, 조화 진동자, 마구잡이 걷기, 이상화된 전기 회로 등이 우리 공구 상자의 공구들로 활약한다. 우리는 이들을 풀 수 있는 예제, 즉 잘 정의된 가정 속에서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으며, 결과가 모형 속 다양한 매개변수에 어떻게 의존하는지 해석할 수 있는 예제로 사용한다. 이 접근법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평가할 수 있다. 모형들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만약 이것이 바닥에 깔린 물리학이라면, A는 B에 따라 2차식으로 변할 것이다..." "이 가정 하에서, 데이터는 다음과 같이 감소할 것이다..." 만약 옳지 않은 결과를 찾아냈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주장들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과 모순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이론의 역할은 또한 예측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비록 내가 "실험 없이 예측이 무슨 쓸모가 있나?"라고 말할 생물학자들을 알기는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예측의 가치를 인정한다. 디랙의 반입자 예측과 아인슈타인의 태양빛 굴절 예측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힉스 입자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서 예측은 전설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예측을 실험에 대한 동기이자 학문을 전진시키는 동인으로 바라본다. 물론, 종종 예측이 틀릴 때도 있지만, 그것은 대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이론 연구가 예측의 형태를 그 자체로는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그 이론을 염두에 두고 실험을 설계하는 데에 유용할 수 있다. 일례로, Bialek (2018)에서는 레일리의 청각 연구부터 왓슨과 크릭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에서 이론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수많은 역사적 예제를 제시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나는 이론이 '결과'가 아니라는 관점에 반대를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이라이프>와 다른 생물학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들 속에서 당당하게 수학적 표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과 이론 결과를 맞춰 나감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나는 이것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잘 읽히는 논문들을 만들어낸다고 확신한다. 또한 이론과 실험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과학적 방법 측면에서도 더 정직한 것이다.


독자들은 물리학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들 속에서, 생물학적 정보, 배경, 결과가 자주 포함된다는 것을 듣고 흥미롭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수십년 전 고에너지 물리학자인 동료가 내 책상 위에서 점균류 Dictyostelium discoideum의 패턴 형성에 대한 논문 원고를 보고 던진 질문을 또렷이 기억한다. "왜 물리학자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걸 연구하죠?" 하지만 이제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연구를 하고 있고, 많은 물리학 학술지들은 cAMP 신호 전달, 나선형 파동, 주화성(走化性; chemotaxis) 등에 대한 논의로 가득차 있다. 만약 우리가 학제간 연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나는 생물학 논문들 안에 이론을 위한 중요한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 논문의 '결과' 절 뿐 아니라 이론과 실험을 결합한 논문의 '결과' 절에도 말이다.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만약 아직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면, 호지킨과 헉슬리의 유명한 1952년 논문을 읽고 실험과 이론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론은 논의 절, 혹은 심지어 보충 자료로 강등되지 않았고, 대신 마치 가장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것처럼 논문의 본문에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논문은 <생리학 저널(Journal of Physiology)>에 실렸다. 동일한 구조는 생화학 학술지에 (독일어로) 출판된 미카엘리스와 멘텐의 논문(1913)에서도 발견된다. 만약 이것이 백 년 전에 적절한 일이었다면, 어째서 이제는 수학적 모형들의 세부 사항들이 전부 논문 뒷쪽으로 밀려나야 하는가?


많은 독자들은 내가 생체 시스템의 정량적 묘사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가 생물학자와 물리학자의 고정관념 간의 긴장 관계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주어진 시스템의 모든 복잡성을 다 포함하려 하는 반면, 물리학자들은 일반성과 최소성을 추구한다. 최근의 다른 논평들에서도 강조되고 있듯 생물학 내에서 이론의 역할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 속에서 물리학-생물학 국경의 양편에 있는 과학자들을 훈련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물학 커뮤니티에 구체적인 예제를 제시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이 주어졌고, 이 논문의 한 가지 목표는 이 빈틈을 메우는 것이다.


전체 커뮤니티를 대표하여 어떤 주장을 하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아래에서 나는 (최소한 일부) 물리학자들이 생물학의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유명한 현상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대한 예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현상은 세포 수용기의 작동에서부터, 박테리아의 주화성, 활동 전위의 전파, 그리고 형광 광표백 기법(fluorescence recovery after photobleaching; FRAP)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바로 확산 현상이다. 시적 허용을 이용하여, 우리가 확산 방정식이나 픽의 법칙(Fick's law)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점에 있다고 상상하자. 따라서 아래에 주어지는 실험적 관찰과 이론적 분석은 모두 새로운 것이고 '결과' 절에 포함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데이터와 이론이 (바라건대) 커뮤니티 내에서 널리 이해될 수 있는 간결한 표현 속에서 통합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결과' 절의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다. 첫 번째 버전은 '미시적' 모형을 사용하는데, 이 모형은 생체 시스템을 간결하게 묘사하되 거시적인 규모에서 관찰되는 거동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들은 다 포함한다. 미시적 매개변수들이 거시적 답에 포함되는 방식은 일반적인 것(혹은 물리학자들의 표현으로 보편적인(universal) 것)으로 드러날 것이고, 이것이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다. 두 번째 버전은, 아마 조금 더 어려울 텐데, '차원 분석'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는 자연 현상을 분석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이다. 여기서, 다양한 양들 사이의 관계는 이들이 측정되는 단위(질량, 길이, 시간, 전하 등)를 살펴봄으로써 추론된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구체적으로는 맥스웰의 1869년 연구에서부터 사용된 기법으로서, 이 기법은 종종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는데, 그 오차는 흔히 쓰는 표현대로, 많아야 두 배 차이(factors of two)이다.


더 궁금하면 논문 ㄱㄱ

내가 너무 <이라이프>를 편애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이 논문은 소개해야겠어서 또 <이라이프> 논문을 들고 왔다. (게다가 이 논문 저자 중에 내 사형(師兄)이 포함되어 있다 ㅋㅋ) 아래에 초록과 요약문을 번역한다.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이 독감 진화를 조절한다

초록
RNA 바이러스 진화를 예측하고 조절하려면 이 병원체에 접근할 수 있는 변이 판도(mutational landscape)를 규정하는 분자 요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RNA 바이러스는 대개 변이 속도가 빠르기에,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생물리 성질을 갖는 단백질 변이들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따라 단백질 접힘과 기능에 위협이 가해지고, 이 위협에 의해 바이러스의 진화가 제한된다. 우리는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 유지 메커니즘이 바이러스 단백질 변이체들의 적응도에 대한 주요 결정 인자로서 바이러스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화학적으로 통제된, 다양한 단백질 항상성 환경을 가진 숙주 세포 안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증식시켰다. 우리는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체에 작용하는 선택압의 본성과 특정 변이 궤적의 접근 가능성이 모두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에 의해 유의미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아냈다. 이 발견으로 바이러스 진화를 결정하는 숙주-병원체 상호작용의 특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숙주의 단백질 항상성을 조절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저항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항바이러스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에도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요약
독감 바이러스는 우리의 면역계에 침입하여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킴으로써 치료에 대한 저항성을 키운다. 특별히, 그들의 유전체에 발생하는 변이들로 인해 독감 바이러스 단백질들이 변형되어 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방어 체계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 변이들은 공짜가 아니고, 바이러스 단백질들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정한 3차원 구조를 만드는 과정("단백질 접힘"이라 불린다)을 방해하여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인간 세포 안에는 샤페론(chaperone)이라 불리는 단백질들이 존재해 우리의 다른 단백질들이 올바로 접힐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독감 바이러스들은 스스로 샤페론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대신 숙주의 샤페론을 훔쳐서 사용한다. 따라서 숙주의 샤페론들은 바이러스의 증식 능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숙주 샤페론들이 바이러스의 진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논문에서 Phillips et al.은 포유류 세포를 이용해 숙주 샤페론들이 어떻게 진화하는 독감 바이러스 군집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먼저 세포들을 조작하여 각각 정상 샤페론 수치, 높은 샤페론 수치, 혹은 비활성 샤페론을 가진 세포들을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H3N2 독감 바이러스를 약 200 세대에 걸쳐 이들 다른 조건에서 키운 후, 유전자 서열을 뽑아내 이 바이러스가 각 특징적인 숙주 샤페론 환경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조사했다.

Phillips et al.은 숙주 샤페론들이 독감 바이러스 군집에서 변이가 누적되는 속도 및 독감 유전체에 누적되는 변이의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Hsp90이라 불리는 샤페론이 비활성화되었을 경우, 바이러스 군집에서 변이들이 기존 유전자를 대체하는 속도는 정상 혹은 높은 샤페론 수치를 가진 세포들에 비해 훨씬 느렸다. 게다가, 일부 특정 변이들은 높은 샤페론 수치의 세포들에서 더 번성했지만, 다른 변이들은 샤페론이 비활성화된 세포에서 더 번성했다.

이 결과는 독감의 진화가 숙주 샤페론 수치에 의해 복잡하고 중요한 방식으로 영향 받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샤페론이 어떤 단일 변이의 효과를 향상시키는지 방해하는지는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 이 발견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독감 바이러스가 사용할 수 있는 샤페론은 조직에 따라, 개체에 따라, 감염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바이러스가 스스로를 변형하고 진화하는 능력은 샤페론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견은 같은 목적으로 숙주 샤페론을 훔쳐 쓰는 HIV나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다른 바이러스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정 샤페론이 바이러스의 적응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발열이나 바이러스의 숙주 전환 등과 같이 병리적으로 유의미한 조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효과를 정량화해야 할 것이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장차 이러한 통찰력이 바이러스가 저항성을 진화시킬 수 없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라이프>에 실린 이 기사는 제목을 딱 보는 순간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내용이라 전문을 번역한다. 귀찮아서 각주는 생략.

석기 사용: 원숭이가 조개를 남획하다

초록
태국의 마카크원숭이들이 석기를 사용한 결과 해안 조개류의 크기와 군집 밀도가 감소했다. 기존에는 남획 효과가 오직 인간 활동에 의해서만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본문
동물들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구조상 (예컨대 껍질이나 뼈로) 보호되어 있거나 숨어 있는 음식을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그 결과 식단의 범위를 더 넓힐 수 있다. 도구의 사용은 또한 일반적으로 먹이 획득 효율의 증가와 연관된다. 인간이 사용했던 일부 사냥 및 어획 도구들은 매우 효율적이었기에 먹이가 되었던 생물종의 지역적, 더 나아가 심지어 광역적 멸종을 초래하기도 했다.

도구를 사용한 인간의 음식 채취는 다양한 방식으로 먹이 종의 생물학에 영향을 미쳤다. 남획은, 특히 더 큰 개체들이 채취 대상이 되는 경우에, 피획 집단의 구성원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어리고 작아지는 효과를 불러오는데, 이는 특히 (많은 조개 종의 경우와 같이) 일생 동안 성장하는 종에서 잘 나타난다. 크기에 따라 선택하는 인간의 음식 채취나 취미 사냥은 진화상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즉 영향 받는 먹이 집단에서 더 작은 몸 크기를 만들어내는 유전적 변이형들이 급속도로 보편화되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채취 압력에 따른 이러한 효과의 많은 예를 찾아 정리해왔고, 이러한 활동의 고고학적 기록은 최소한 과거 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기록은 특히 조개류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시간에 따른 크기의 변화를 선사시대 패총 유적의 여러 층에서 모은 조개 껍질로부터 정량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흰개미를 '낚는' 데 사용하는 것을 관찰하기 전까지, 도구의 사용은 인간만의 특성으로 여겨졌다. 행동과학자들은 그 때로부터 다양한 다른 영장류들(예를 들어 오랑우탄, 마카크원숭이, 흰목꼬리감기원숭이) 및 비영장류들(예를 들어 까마귀와 돌고래)이 (실수가 아니라) 상습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모아왔다. 이제 Lydia Luncz와 동료 연구자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 도구를 사용해 남획하는 과정을 <이라이프>에 최초로 보고한다.

태국의 카오 쌈 러이 욧(Khao Sam Roi Yot) 국립 공원의 섬 두 개에 거주하는 필리핀원숭이(Macaca fascicularis)는 석기를 사용해 해안에 분포하는 굴과 다른 조개류의 껍질을 부수고 열어서 속살을 얻는다. 자연 실험을 기회로 삼아, Luncz et al.은 코람 섬(Koram island)과 놈싸오 섬(NomSao island) 사이의 조개 크기와 석기 사용의 차이점을 연구했다. 코람 섬에는 스물여섯 마리의 원숭이가 1551 m에 달하는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조개를 석기를 사용해 처리하는 반면(한 원숭이당 55.4 m의 해안), 놈싸오 섬에는 겨우 네 마리의 원숭이가 653 m의 해안에서 조개를 채취한다(한 원숭이당 163.3 m). 따라서, 두 섬에 분포하는 조개의 생태 조건은 매우 유사한 반면, 코람 섬의 조개들은 놈싸오 섬의 조개들에 비해 약 세 배 정도 자주 공격 받는 것이다.

Luncz et al.은 코람 섬의 여러 먹이 조개 종들이 놈싸오 섬의 종들에 비해 유의미하게 작은 군집 밀도와 평균 크기를 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코람 섬의 굴은 놈싸오 섬의 굴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60%의 크기를 가진다. 이 크기 차이는 진화상 유전 과정의 결과라기보다 생태 역사의 차이로 인한 결과로 보이는데, 이는 두 섬에서 비슷한 성장 시기에 있는 조개들은 비슷한 크기를 갖는 반면, 코람 섬에서는 생식이 가능한 성체 수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코람 섬의 원숭이들이 (더 작은) 조개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돌들은 놈싸오 섬의 원숭이들에 비해 유의미하게 더 작은데, 심지어 코람 섬에는 놈싸오 섬보다 작은 돌이 상대적으로 더 적게 분포함에도 그렇다. 이 결과는 남획 자체로 인해 기술의 진보가 일어나는 예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도구를 사용하는 원숭이들에 의해 상대적으로 더 자주 채집이 일어나면, 해당 지역 조개들의 크기가 평균적으로 더 작아지고, 이로써 더 작은 도구를 사용할 필요가 생긴다. (그리고 이로써 조개 크기는 더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비슷한 되먹임 고리가 인간 사냥-채집의 기술 진보를 불러왔다고 여겨졌다.

이제 도구를 사용한 남획이 인간-먹이 상호작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향후 연구에 있어 중요한 방향은 다른 필리핀원숭이 군집 및 도구를 사용하는 다른 생물종들의 채집 활동이 유사한 생태 변화를 불러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이 연구로 인해, 비인간 생물종들의 도구 활용 채집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서 먹이 종에 미치는 보다 장기적인 진화적 효과도 더욱 활발히 연구될 것이다. 다양한 비인간 영장류의 도구 사용에 관한 고고학적 기록은 과거 4,3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여기가 연구의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번 <이라이프(eLife)>에 실린 흥미로운 논문 소개글. 유전의 세계는 넘나 심오한 것!

유전: 멘델을 속여먹는 유전자군

초록
wtf 유전자군에 속한 일부 대립유전자(allele)들은 다른 대립유전자를 죽이는 독극물과 자신들을 살리는 해독제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퍼져 나가는 확률을 늘릴 수 있다.

본문
눈의 색깔로부터 특정 질환을 가질 확률에 이르기까지 각 개체가 갖는 형질들은 많은 경우 유전자를 통해 부모로부터 그 자식에게 전달된다. 인간과 같은 이배체 생물의 경우, 대부분의 세포는 각 유전자에 대해 두 쌍의 사본(대립유전자)을 갖고 있다. 이 규칙의 예외는 생식세포(정자와 난자)로, 하나의 대립유전자만을 갖고 있다. 멘델의 유명한 분리의 법칙에 따르면, 생식세포의 절반은 특정 유전자의 대립유전자 한 쪽을, 나머지 절반은 나머지 한 쪽을 가진다. 따라서 모친의 대립유전자 양쪽은 모두 자식에게 전달될 확률이 동일하며, 이는 부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부 대립유전자는 멘델의 법칙을 거역하고 동일한 대립유전자를 갖지 않은 생식세포를 죽임으로써 자신들이 다음 세대에 전달될 확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대립유전자를 지닌 유전자는 식물과 균류 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서도 발견되었고, 이들은 얌체 운전자(selfish driver), 생식세포 살해자, 포자 살해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얌체 운전자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는 많은 부분이 아직 불분명하나, 그럼에도 그들이 다른 세포를 죽이는 방식을 기준으로 일반적인 분류를 세울 수 있다. '독극물-해독제' 모형에서, 얌체 운전자는 독극물을 만들고, 이 독극물은 독극물의 효과로부터 보호해 주는 해독제가 없는 모든 생식세포를 죽인다(그림 1A와 B). 반면 '살해자-목표물' 모형에서는, 얌체 운전자는 특정 목표 유전자를 가진 생식세포만을 죽이는 독극물을 생산한다(그림 1C).

[그림 1] 얌체 운전자의 독극물-해독제 모형과 살해자-목표물 모형
두 모형 모두에서, 특정 대립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확률이 더 높은데, 이는 그 대립유전자를 갖지 않은 생식세포를 죽이는 독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A, B) 독극물-해독제 모형에서, 세포는 해독제(알약 모양)로 중화시킬 수 있는 독소(해골 모양)를 생산한다. 두 물질을 모두 생산하지 못하는 대립유전자는 회색으로 표시되었다. 단일유전자 모형(A)에서는 동일한 유전자가 대체 전사(alternative transcription)를 통해 독극물과 해독제를 모두 부호화한다. Nuckolls et al.은 유전자 wtf4Schizosaccharomyces 효소 안에 있는 얌체 운전자임을 보인다. Hu et al.wtf 유전자군의 다른 유전자 두 종류(cw9cw27)도 역시 얌체 운전자임을 보였다. 이중유전자 모형(B)에서는 독극물과 해독제를 생산하는 유전자가 서로 다른데, 균류인 Neurospora에서 이와 같은 예를 찾을 수 있다(Hammond et al., 2012). (C) 살해자-목표물 모형에서, 독소는 특정 표지(검은 동심원 모양)를 가진 대립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는 세포만 파괴한다. 이것이 초파리 Drosophila의 경우로, 여기서는 분리 왜곡 대립유전자(Sd; segregation distortion)가 반응자(Rsps; Responder) 표지를 가진 생식세포를 죽인다(Larracuente and Presgraves, 2012).

얌체 운전자가 진화해 온 과정과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하여, Sarah Zanders와 Harmit Malik이 이끄는 연구팀과 Li-Lin Du가 이끄는 연구팀은 두 종의 효모, Schizosaccharomyces kambuchaS. pombe를 연구했다. 이 두 종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고, 심지어 어떤 연구자들은 이 둘을 별도의 종으로 보지 않기도 하나(Rhind et al., 2011), 둘의 교배종은 생식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연구에서, Zanders와 동료 연구자들은 S. kambucha 안에 이 교배종의 생식 능력을 제거하는 얌체 운전자가 최소한 세 종류 존재한다는 것을 보였다(Zanders et al., 2014).

이들 얌체 유전자들의 유전적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Zanders와 Malik의 연구팀은 얌체 운전을 일으키는 염색체 상의 영역을 찾아냈다(Nuckolls et al., 2017).
이 영역 안에서, 이들은 wtf4라는 이름의 얌체 운전자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 유전자는 건방진 이름을 갖고 있는 큰 유전자군의 일원으로, 독극물과 해독제를 모두 만들어 낸다.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Nuckolls et al.은 독극물과 해독제의 형광 버전을 만들어 생식세포 내부와 주변에서 이들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조사했다. 이 아름다운 실험에서 wtf4의 독극물 분자는 고향 세포를 떠나 주변 세포들로 들어갈 수 있는 반면, 해독제 분자는 그를 만든 세포 안에 갇혀 있음이 드러났다.

이와는 독립된 연구로서, Du와 동료들은 wtf 유전자군에 속한 두 가지 다른 유전자, 이름하여 cw9cw27S. pombe의 여러 계통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독극물-해독제 모형을 사용하는 얌체 운전자임을 알아냈다(Hu et al., 2017). 이들은 cw9cw27의 대립유전자 양쪽을 모두 갖고 있지 않은 변이 이배체 세포주가 그 두 유전자에 대해 한쪽 대립유전자씩만 갖고 있는 세포주에 비해 더 많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이 두 유전자가 모두 얌체 운전자임을 암시한다. 이들이 cw9cw27 각각에 대해 한쪽 대립유전자만 갖고 있는 이배체 변이체를 만들었을 때, 이 효모 세포주는 두 유전자 중 하나의 한쪽 대립유전자만 없는 세포주에 비해 더 살아남기 힘들었다. 이는 이 두 유전자가 서로를 돕지 않고, 세포의 생존률에 독립적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다른 세포들을 죽일 수 있는, 같은 유전자군에 속한 유전자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행동 양식을 조사함으로써, 이 두 연구팀의 연구는 멘델이 주장한 유전 법칙을 위배하는 유전자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킨다. 향후 이 분야의 연구로 인해 우리는 이기적 유전요소들이 유전적 다양성에 미치는 충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식물, 균류, 동물, 심지어 인간과 같은 다양한 종에서 이와 같은 메커니즘이 불임과 같은 조건들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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